창의와 재미, 그리고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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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9 평가목표 vs 학습목표, 창의성을 생각하다
  2. 2008/08/01 70%의 자리

몇 년 전부터 수학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나이 30줄에 들어서 무슨 놈의 수학 타령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수학에 대한 흥미는 그칠 줄 몰랐다. 오죽했으면 '수학의 정석'을 다시 책꽂이에 꽂았을까.

학창시절, 수학을 좋아했던 적이 있다. 특히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그 때는 수학경시대회에서도 곧잘 입상하곤 했다. 자그마한 시골학교에서 내가 수학을 제일 잘했고, 수학선생님의 기대에 찬 시선을 즐기며 수학 문제 풀이에 몰두했다. 그 때문에 수학 시험 채점 때가 가장 긴장되고 기대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시골학교에서 수학경시대회에 출전하여 도시 아이들보다 높은 성적을 거두고 입상했을 때의 뿌듯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수학에 대한 열정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사그라졌다. 시골학교에서 도시학교로 유학을 갔는데, 그 학교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몰려드는 학교였다. 워낙 수학을 잘하는 아이들이 많았던 까닭에 내 수학실력은 그다지 인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수학선생님의 기대를 독점하는 호사 따위는 바랄 수도 없었다. 그 때부터 수학에 대한 흥미는 급전 직하하기 시작했다. 수학공부는 단지 대학입시용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 수학은 나로부터 영영 멀어져만 갔다.

그로부터 10 여 년 뒤, 난 갑작스럽게 수학과의 연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제공된 자기계발비를 사용하기 위해 뻔질나게 서점에 드나들다가 우연히 교양수학 코너에서 다양한 수학책을 발견하게 된 것이 그 계기였다. 그 때 이공계 대학생 필독서라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도 손에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다. 이럴수가. 수학이 이렇게 재미있었던가. 내 안에 수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 한 해 동안 교양수학 책을 20 여 권 정도 탐독했다. 수학문제의 정답을 맞추는게 중요했던 학창시절과는 다르게 수학에 대한 순수한 재미를 느끼게 된 것이다.

그 때, 난 집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 난 수학을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수학성적을 잘 받는 것을 좋아했나보다."

평가목표 vs 학습목표

며칠 전 좋은 글을 읽었다. 아이를 소극적인 바보로 만드는 우리교육이란 글이다. 이 글은 평가목표 지향과 학습목표 지향의 차이에 대해 설명한다. 이는 EBS 다큐에서 다뤘던 내용이라고 한다. 평가목표와 학습목표란 무엇일까.

평가목표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보이고, 얼마나 똑똑한지를 나타내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학습목표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 하고, 도전을 통해서 익히려는 것을 말한다. 평가목표의 상황에서 사람은 결과만 중시하게 되지만, 학습목표의 상황에서는 지식을 새롭게 알아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게 된다.

이거야 말로 내 학창시절을 잘 설명해주는 명쾌한 말이 아닌가. 학창시절, 난 전형적인 평가목표 지향이었다. 배움의 기쁨보다는 높은 성적의 기쁨이 더 컸다는 말이다.

창의성은 학습목표 지향에서 나온다

평가목표 지향의 사람에게 창의성을 바라기는 힘들다. 평가목표 지향의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평가하겠다는 기준이 제공되지 않으면 뭘 해야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스스로 탐구하거나 새로운 발상을 실험하는 것에 익숙치 않다. 오히려 시험을 보는게 가장 속 편한 동기부여 방법이다.

창의성은 그 정반대되는 지점에서 싹튼다. 학습목표 지향인 사람이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가 많은 점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런 사람은 외부의 개입없이도 스스로 새로운 탐구와 실험에 대한 동기부여가 가능하다. 창의적일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평가목표 지향이나 학습목표 지향이란 게 고정 불변의 속성은 아닐 것이다. 학창시절의 나는 평가목표 지향이었지만, 지금은 학습목표 지향으로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요즘에는 천문학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별자리와 천체망원경에 대한 생각으로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사실 세상을 둘러보면 배울게 너무 많다. 너무 늦게 깨달은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함을 느낀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학습목표를 지향하도록 교육하고 싶다. 창의성의 즐거움을 듬뿍 느낄 수 있는 호기심 가득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 세상 모든 아이들이 이렇게 자라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육 정책을 세우시는 분들이 꼭 참고하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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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일공이

70%의 자리

분류없음 2008/08/01 00:51

© mark sebastian on Flickr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라는 책에는 저를 단숨에 사로잡은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70%의 자리'에 대한 내용입니다. 인용구가 약간 긴 느낌도 없지 않지만 한구절도 놓치기 싫은 마음이 들어 전부를 인용해봅니다.

나는 그 '자리'가 그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 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0 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여백이야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되는 것 입니다.

자기의 능력을 키우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먼저 자기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동양사상의 가르침이라는 말입니다.

70%의 자리는 개인 뿐만 아니라 회사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밤을 낮삼아 일하는 개발자와 개발자라면 응당 그래야 하는 것처럼 여기는 회사가 많습니다.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말이 개발자 스스로에게는 냉소지만 관리자들에게는 자신의 탁월한 관리능력의 표현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70%의 자리 담론을 적용해본다면 이런 회사들은 이미 창조적이거나 창의적일 수 없는 회사입니다. 능력의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욱 참담한 현실은 이런 회사일수록 자신의 능력이 얼마인지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프로젝트의 스케쥴은 우연적 요소에 의해 고무줄 늘어나듯 변경되기 일쑤입니다. 매출에 대한 예측치 역시 과학적인 타산보다는 희망섞인 추측으로 평가됩니다. 프로젝트가 지연되면 사람을 충원해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람을 늘린다고 해서 회사의 능력이 그에 비례하여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회사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터무니없는 일정으로 개발자들에게 압박감을 줍니다. 물론 이럴 때는 항상 시장 상황이라는 핑계를 대곤 합니다. 강요받은 일정이 지났을 때 개발자가 처하게 될 상황은 가히 절망적입니다. 그 때부터는 절대로 정시 출퇴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개발자에게서 30%의 여백을 빼앗는 것이지요. 개발자가 일정에 허덕여 창의성을 잃었다면 회사도 그와 동시에 창의성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 개발자에게서 회사의 근무환경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면 즉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은 회사의 객관적 능력을 초과하는 일들을 개발자의 희생으로 메우고 있다는 부정적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이럴수록 회사의 능력을 객관화하여 관찰해야 합니다. 물론 객관화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개발자들에게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일을 시켜 보세요. 에구, 일의 진척이 너무 더딜 것 같다구요? 미안한 말이지만 그게 그 회사의 객관적 능력입니다. 능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자기의 자리를 찾아야 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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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일공이